연예일반

연기를 하려면 생계형으로...

까칠부 2010. 1. 12. 15:49

그동안 아이돌 출신들이 연기자로 데뷔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그거였다.

 

"왜 저리들 서둘까?"

 

대부분 꽤 삐까한 비중있는 배역들로 연기데뷔를 하고 있었거든. 문제는 그런 배역들이 또 대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배역이더라는 것이다.

 

차라리 단역으로 그냥 지나칠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성적인 조연이더라도 별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쓸데없이 배역의 비중이 높다 보니. 사람들의 눈은 모이고 바닥은 드러나고 그걸로 끝. 사람들은 한 번 선입견을 갖기는 쉬워도 그것을 바꾸기는 어렵다.

 

물론 그럼에도 윤은혜같은 성공사례도 있지만 그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연기력을 검증하기 전에 워낙 드라마의 캐릭터가 윤은혜와 딱 맞아떨어졌으니. 그러나 항상 그런 운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대부분 그런 운이 없었고.

 

그래서 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돌이 뭐라고..."

 

장동건도 한때 얼굴 뿐인 배우라 놀림당하던 때가 있었다. 나름 장동건도 아이돌이었다. 그러자 장동건은 잠시 활동을 쉬면서 공부하는 것으로 그같은 놀림에 대처했다. 공부를 마치고 연기에 복귀할 때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그리고 주류영화가 아닌 비주류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배우로서 복귀했었다. 참 먼 길이지만 그리 힘들다는 것이다.

 

아역출신이 끝내 아역출신이라는 딱지를 벗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것도 그래서다. 아역은 그냥 아역일 뿐이다. 성인연기자가 아니다. 아이돌이 가수가 아니듯 아역 역시 성인연기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기준이란 매우 관대하다. 그러나 아역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냉혹한 대중의 심판에 알몸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아역이라는 이미지를 안은 채.

 

아이돌은 아역보다 더 심하다. 가요계에서조차 낮추어 보는 경우가 많은 아이돌인데 그런 아이돌의 연기에 대해 대중이 관대할 리 없다. 아이돌로서는 스타더라도 오히려 그런 점때문에 연기에 있어 마이너스를 먹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 또 비중 높은 배역으로 해서.

 

왜 청춘불패가 좋은 프로그램인가? 헌터스에 출연해봐서 알겠지만 아이돌이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에 나가면 병풍이나 면하면 정말 다행이다. 구하라도 결국 병풍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워낙 고만고만한 멤버들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보니 그리 높은 수준의 예능감은 요구하지 않는다. 적당히 서툴고 모자라도 익스큐즈하며 보아주는 관용도 있다. 1박 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시청율 높은 리얼버라이어티보다 청춘불패가 더 유리한 이유다. 비록 금요일 심야라는 취약시간대라는 한계는 있어도.

 

얼마나 좋은가? 적당히만 해도 통편집은 안 당하고, 또 적당히 한다고 뭐라 욕먹거나 무시당할 것도 없고, 그러면서 예능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고. 자신도 알릴 수 있고.

 

구하라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이 높아진 것은 달콤한 걸에 이어 이 청춘불패의 출연을 통해서였다. 아직 어설픈 예능감에도 이 청춘불패를 통해 예능돌로서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대로. 연기도 그렇게 하면 된다. 처음부터 대단한 배역을 얻기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그분이 오신다에서와 같은 자신의 이미지를 살린 단발성 출연도 좋고, 아니면 다른 드라마의 비중없지만 그래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배역도 좋고. 아이돌로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지만 철저히 신인이라는 자세로.

 

그게 생계형 아니던가? 철저히 신인의 자세로 아래에서부터 차근히 견디고 노력하며 올라오는. 한 번에 훅 뜨기보다 조금씩 인정받으며 자기 자리를 찾는. 그것이 한승연이 지금껏 카라를 지켜온 비결 아니었던가?

 

구하라가 라디오를 통해 연기연습을 한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되었던 것이 그런 점이었다. 구하라는 아직 발성이 안되는데? 발음이 마구 새는데다 부정확하기까지 한데. 라디오야 귀엽게 익스큐즈하며 들어주더라도 연기로 넘어가면 그건 끔찍한 대참사가 될 수 있다. 과연 대중은 그것을 보아 넘길 것인가? 그리고 한 번 선입견이 박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더 걱정되는 것이다.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때 어설픈 시작으로 자칫 앞으로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지는 않을까. 다른 아이돌이 걷는 길을 구하라도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구하라의 나이가 이제 20살이다. 신인치고도 어리다. 성인연기자로서는 아직 한참 어리다. 아역으로 데뷔했다년 여전히 아역이나 하고 있을 나이다. 과연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준비도 안 된 이 때.

 

그리고 또 하나 더하고 싶은 것은 연기라는 게 주연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솔직히 구하라는 예쁘기는 한데 워낙 개성이 강해서. 내가 무대에서 더 빛날 것이라는 점도 그 개성이 연기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감이 안 잡히는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주연급이라 하면 어느 정도 납득되는 보편적인 외모들이었거든. 평범하게 예쁜 배우들이 많았다. 사실 그게 더 어렵지만, 그러나 구하라는?

 

개성이 강하다는 것은 연기자로서 대중에게 자신을 어피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한 개성은 자칫 연기자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성격배우, 혹은 캐릭터 배우, 즉 그 강한 개성으로 인해 배역이나 연기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그런 예가 적지 않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특정한 분야에서만큼은 자기만의 색깔과 장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점차 실력과 경력이 쌓이면 그 영역을 스스로 넓혀갈 수도 있다. 대배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루아침에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깊이를 더해갈 때 대배우는 만들어진다.

 

내년 구하라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공부를 해보겠다 했을 때 그에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래서다. 어설프게 실전에 데뷔하기보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나하나 이론부터 갖춰가면서 초반의 연기는 단지 경험으로만. 신인의 자세로 단지 알린다는 차원에서. 시간은 많고 인생은 기니까.

 

이경규가 말했었다.

 

"10년을 고생하면 인기가 10년을 갑니다.

 

물론 그것이 항상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결코 서두르지 말고.

 

뭐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이 깊은 아가씨니까. 현실적이기도 하고 낙천적이기도 하고. 그냥 기우에서 한 번 해 본 소리다. 여기저기서 좀 시끄러운 소리들이 많아서. 벌써부터 뭐라고 저리 말들이 많은가.

 

아직 해는 동녘 지평선을 어른거리고 가야 할 길은 재너머 멀다. 벌써 뛸 것도 주저앉을 것도 없다. 해질 녘 재넘어 그곳에 닿으면 그때 쉬어도 늦지는 않으니. 그것을.

 

DSP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서두를 것 전혀 없다. 전혀. 전혀. 아직 구하라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