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국사시간에 들어보았을 것이다.
전분육등 연분구등,
토지의 생산량을 여섯 단계로 나누고,
다시 해마다 생산량을 아홉 단계로 나눠 그에 맞는 세금을 거둔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토지에서 더 많이 생산하게 되면 더 많은 세금을,
거꾸로 더 열악한 토지에서 더 적은 생산이 나오면 더 적은 세금을,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부민고소금지법이었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백성들로 하여금 수령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한다. 누가 고발할까?
무지렁이 백성이 아니다. 지역유지들이다. 배울만큼 배웠고 힘 또한 있다.
조정의 행정력이 아직까지 자치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던 향촌까지 파고들기 위해서는,
보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에서 육등이라 하니 육등이 되고 구등이라 하니 구등이 된다.
더 세금을 내라 하면 꼼짝없이 세금을 내야 한다.
그만한 힘이 조정과 지방관에게는 있었다.
문제는 세조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김종서를 비롯 수많은 조정의 대신들을 죽이고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집현전의 학사들이며 안평대군 등 종친들마저 수도 없이 죽였으며,
심지어 세종의 후궁이던 혜빈 양씨마저 그 자식들과 함께 살해했으며,
무엇보다 왕을 죽이고 왕비를 노비로 삼는 패악을 저질렀다.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던 당시 조선에서 그것이 용납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조는 왕위에 오르고 많은 공신전을 풀어 조정의 환심을 사려 한다.
별별 이유로 공신이 되었고 공신전을 받았다.
사실 이것도 문제였다. 공신전은 기본적으로 조정이 소유한 땅에서 나눠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공신들에게 나눠준다. 당연히 조선의 재정에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관료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세종 이래 조정의 권위에 눌려 있던 지주들에게도 환심을 사려 한 것이다.
부민고소금지법을 폐지한 것은 그들에게 숨통을 열여주었다.
그리고 이내 연분구등의 구분은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지방관이 직접 조사해서 세금을 매기려 해도 유지들이 반발하면 이제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부족한 정통성을 그런 식으로 지방의 유지들에게 이익을 주어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성종대에 이르면 연분구등은 폐지되고 하지하로 모든 세율이 일원화된다.
최저의 세금만을 모든 토지로부터 걷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을까?
방군수포란 원래 편법이었다. 병역을 서지 않는 대신 포를 낸다.
그런데 재정이 부족해지니 군사를 유지할 돈이 부족해지며 그 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중에는 군역을 대신하는 포인데 세금처럼 거둬 다른 곳에도 쓰게 되었다.
조선 명종대에 이미 판옥선은 개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수량을 갖추는데는 수십년이 걸려 임진왜란 직전에야 필요한 규모를 갖추었다.
임진왜란 직전 조정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려 해도 재정의 부족은 조선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이가 십만양병을 주장했다지만 돈이 있어야 군대를 유지할 것이 아닌가.
모든 명목의 세금을 다 더해도 세율은 30% 이하. 계산한 게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 못찾겠다.
원래 전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정통성이 부족하면 결국 타협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양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도 정통성 문제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양보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그 나라의 내적부실로 이어진다.
도대체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에 입힌 해악이 얼마인지.
세종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세종의 아들이었다. 무엄하게도 세조라 불리고 있다.
양녕대군이 웃으며 좋아했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종의 아들과 손자와 후궁이 바로 세조의 손에 모두 죽어나갔다.
왕위를 뺐겼는데 이보다 통쾌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나라도 작아, 생산도 많지 않아, 그런데 세율까지...
참 어려운 나라였다. 조선이란. 폐해는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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