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씨의 동진이 유학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마소에 의해 위의 황제인 조모가 죽임을 당한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하로써 자신의 왕을 죽인다. 그것은 유교사회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최악의 패륜이었다. 그래서 조모가 죽자 사마소는 자신의 명을 따른 죄밖에 없는 성제를 바로 죽여 입막음하고,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는 요식행위를 보이며 책임을 면하려 했던 것이었다.
어째서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당시 연산군과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공신들은 굳이 이들 폐위된 옛왕들을 죽이려 하지 않았는가. 비록 죄인으로 간주하여 위리안치를 시키고, 대놓고 박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죽이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시피 했었다. 왜일까? 왕이기 때문이다. 비록 폐위되었을지언정 그들은 '폐주'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그토록 우왕과 창왕에 대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핏줄이라 강조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우왕과 창왕은 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죽여도 상관없었다.
그러면 어째서 이성계는 공양왕을 죽인 것일까? 공양왕도 한때는 왕이었는데? 죄인이었으니까. 연산군이나 광해군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공양왕의 뒤에는 고려의 부흥을 꾀하는 친고려인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비록 힘을 잃기는 했으나 언제 세력을 모아 이성계가 세운 새로운 왕조에 도전해 올 지 모른다. 그래서 왕으로써 죄인을 벌한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역시 충분히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다. 다만 굳이 위협도 되지 않는데 명분상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천수를 누리고 죽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세조가 단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사육신이 말만 잘했으면 단종은 살 수 있었다? 어림도 없다. 세조야 상관없다지만 세조가 죽고 세조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 때 쯤이면 단종이 가진 확고한 정통성이 이후의 왕위계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명나라에서도 정통제가 살아있으니 경태제가 죽자 바로 정통제를 옹위하려는 세력에 의해 경태제와 태자를 받들던 이들이 모두 몰살을 당하지 않았던가. 당장 세조의 위세에 눌려 있을 뿐 어디서 단종에게 다시 왕위를 돌려주려 모의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금성대군만 해도 끝까지 세조를 인정하지 않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단종을 죄인으로 만들어 폐서인하고 단계를 밟아 죽이는 요식절차를 밟고 있었다. 왕이 왕을 죽이는 방법이다.
바로 명나라 2대황제 건문제 주윤문이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이유였을 것이다. 아직 영락제 주체는 연왕의 신분으로 조카인 주윤문의 신하의 위치에 있었다. 영락제가 정난을 일으킨 명분도 결국 간신들을 멸하고 황제를 바로 보필하겠다는 것이었고 보면 아무리 반란에 성공했다고 더구나 숙부가 되어 조카인 황제를 죽였다는 것은 두고두고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일이다. 설사 주윤문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영락제가 황제가 되고 나서 절차를 밟아 황제로써 죄인을 벌하여 죽이는 것이어야지 그런 식으로 난군중에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주윤문의 죽음을 보고 머리를 쓰게 된 것이다. 주윤문은 죽지 않았다.
만일 실제 주윤문이 살아있었다면 건문제를 지지하던 강남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바로 북경으로 도읍을 옮길 수는 없는 것이다. 자칫 주윤문이 살아있어서 다시 세력을 규합하면 아직 명분은 주윤문에게 있다. 남경을 버리고 북경으로 옮긴 자체가 주윤문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영락제 자신이 확신하고 있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 명의 황제 가운데 누구도 주윤문을 두려워하여 견제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증거가 된다. 다만 살아있을 필요가 있으니 죽이지는 않았다.
참고로 아마 정통제 무렵인가 승려 하나가 자신이 주윤문이라며 주장하고 나선 적이 있었다. 역시 이때도 정통제는 승려를 오히려 우대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그가 과연 주윤문이었을까? 그러나 그같은 행위를 통해 원래 영락제가 주윤문을 보호하려 했음을 천하에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안타깝게 주윤문이 그렇게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영락제가 황제의 자리를 이었다. 뻔하지만 바로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방법이었다. 찬탈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찬탈은 있을 수 없다.
그와는 별개로 역시나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된 비운의 황제란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인 터라 주윤문은 이후 많은 창작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에 이른다. 영락제가 남긴 최고의 업적일 것이다. 영락제는 한 것 없다. 그 손자인 선덕제가 영락제를 훌륭한 황제로 만들었을 뿐. 정통성의 약점으로 인해 주원장이 그토록 꺼리던 환관에 의지하는 측근정치로 돌아서고 말았다. 명의 흑역사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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