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오로지 재미만이 있을 뿐이다.

까칠부 2010. 2. 11. 01:04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만드신 프로그램에는 어떤 교훈과 어떤 완성도에서의 절묘함이 있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어찌 텔레비전을 보시면서 교훈과 완성도를 따지십니까? 오로지 재미만이 있을 뿐입니다."

 

반드시 텔레비전 프로그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든 만화든 영화든 뭐든 한결같다. 문제는 재미다.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라고 단지 정보전달만을 목적으로 할까. 물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다큐멘터리도 재미있어야 본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와 주제와,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흥미를 흩뜨리지 않도록 하는 연출이란 다큐멘터리에서 필수다. 그래서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그 정보의 유익함을 넘어 그 어떤 쇼프로그램보다도 재미있다. 나는 다큐멘터리도 재미로 본다.

 

하물며 재미있자고 보는 드라마나 쇼오락프로그램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가장 바보같이 여기는 게 괜한 의미를 두고 방송을 보고, 또 방송을 보면서 어떤 대단한 걸 찾으려는 것이다.

 

그냥 보고 즐기는 것이다. 보고 재미있으면 재미있어 하고 재미없으면 욕하다 못 참겠거든 채널 돌리거나 화면 끄고, 그 밖의 것들은 그 이후에 생각할 것들이다.

 

내가 여기에 리뷰 쓰는 방식이 그렇다. 일단 보는 동안에는 그것에만 집중한다. 누가 출연하고 뭐가 나오고 어떤 프로그램이고 다 지운다. 그냥 보고 즐긴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그때부터 생각한다. 어떤 내용이었던가. 어떤 방식이었던가. 그것이 어떻게 보였던가.

 

물론 그 전제는 항상 재미다. 아마 내가 리뷰쓰는 말미에 항상 붙이는 말이 있음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었다. 좋았다. 혹은 재미없었다. 최악이었다. 나머지는 단지 그에 붙는 수식에 불과하다.

 

아, 이건 도저히 못보겠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이유를 하나하나 정리한다. 역시 방송이 끝나고도 머릿속에 남는 어떤 것들이 그 근거다. 나는 오히려 방송을 다시 보면서 디테일하게 찾아 쓰는 것보다 이런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유는 그렇게 이유고 논리고를 떠나 머릿속에 남는 어떤 이미지야 말로 내가 그것을 보았던 인상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테일하게 분석하듯 보지 않기에 순수하게 재미를 찾으려는 내게 가장 재미와 관련해 영향을 끼치는 요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리뷰를 보면 사실 그렇게 디테일하거나 한 게 없다. 어차피 보면서 그리 디테일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쓰려고 해도 쓸 건덕지가 없다. 간결하고 두루뭉수리한 어떤 이미지와 그에 관련한 간략한 몇몇 장면들만이 나열될 뿐이다. 그 밖에 대해서는 오히려 리플을 보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아다. 어차피 기억에 없다면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다는 뜻일 테니까.

 

아무튼 그래서 같은 방송을 보고서도 또 시간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재미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이게 뭐냐고 화를 냈다가 또 지나서는 그래도 납득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하고,

 

그러나 역시 후자의 경우도 좋은 건 아니다. 보았을 때 재미있어야지 나중에 떠올려 보니 그런 게 있더라... 대중문화에 있어 대중은 설득의 대상이어야지 동정을 구하는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당장 눈앞에 보였을 때 설득해서 조금이라도 팔아야지 지나고 나니 동정할 여지가 있다는게 말이 되는가.

 

역시 기억에 의지하기에.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다시 시간과 더불어 왜곡되며 또다른 이미지를 전한다.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던 것들이 하잘것없고, 처음에는 별 것 아니던 것들이 대단해 보이고, 그러면서 당시와는 다른 감상과 판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 응한다.

 

한 마디로 주먹구구다. 말 그대로 전제는 한 가지다.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이유를,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이유를, 사실상 하고자 하는 말도 구구한 다른 사연 없이 그냥 재미있다, 재미없다,

 

목적을 떠올리자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 만화책을 읽는 것, 소설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왜이던가? 뭐래도 대단한 교훈을 얻자고? 뭐라도 대단한 완성도를 즐겨보자고? 결국은 재미다. 즐거움이다. 나머지는 단지 그를 위한 수식일 뿐.

 

그래서 나는 뭐든 보고 읽고 할 때는 생각을 지운다. 생각없이 가만히 보고 듣고 즐기고 생각은 그 다음에. 만일 보는 도중 다른 생각이 강하게 든다면 그래서 역시 그것도 실패다. 재미있는데 왜 보고 있는 내내 딴생각이 들까?

 

가장 좋은 것은 그저 생각없이 순수하게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 오늘의 라디오스타처럼. 정말 순수하게 웃으며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래서 라디오스타는 리뷰도 없다. 재미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야 말로 선이다. 뭐든. 내가 믿는 한 가지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