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한 곳에 몰리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그 하나가 문제가 되면 전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은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그에 대한 대안이 그 사회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고. 보다 다원화된 자유로운 사회가 끝내 승리한다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물론 경우는 다르지만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느낀 것도 그것이었다. 너무 이경규 위주다. 문제는 이경규 위주인데 이경규 자신이 너무 자기 중심이라는 거다.
아다시피 그동안 이경규가 침체기를 걷던 것은 그 강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김구라에 결코 뒤지 않는 독설 이미지에, 은초딩을 몇 배 뛰어넘는 제멋대로 이미지, 더구나 강호동과 막상막하의 무데포 이미지, 한 마디로 악당이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힘이 센 악당.
그래서 <남자의 자격> 초반 이경규는 그러한 자신의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김국진을 끌어들였다. 어쩐지 약하고 귀여운 이미지인 김국진으로 하여금 이경규 자신을 잡는 저격수로 만듦으로써 여전히 방송의 중심이면서도 절대자는 아닌 - 약간은 비고 약한 이미지로써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이경규가 여전히 독하고 강한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김국진이 살았다. 더불어 그런 이경규에게 반항하며 깐죽거리는 이윤석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한없이 찌질하고, 그 탓을 이경규에 돌리며 반항하고, 그러나 결국 이경규의 손발일수밖에 없는.
그러나 어느새 전혀 뜻밖으로 김성민과 김태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 바뀌기 시작했다.
김성민은 참 엉뚱한 캐릭터다. 엉뚱한 것을 넘어 통제가 불가능하다. 지지난주던가? 아나운서들과 토론하던 편에서,
"O냐, X냐 그것만 말해!"
"세모!"
그리고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징징거리던 이경규의 모습,
전혀 뜻밖의 상황에, 전혀 생각지도 않던 - 그야말로 장에서 바로 뽑아져 올라온 노필터 멘트를 뱉어냄으로써 이경규를 완전 당황케 한다. 하지 말란다고 되는 게 아니고, 아예 왕따를 시켜버리고 있음에도 김성민의 멘트는 거침없고 그때마다 이경규는 제대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김태원은 어떤가? 김태원은 말 그대로 완벽한 약자 캐릭터다. 말이 좋아 약자고 그냥 모질이다. IQ 81에, 학교는 거의 다니지 않았던 문제학생에, 기본적인 상식조차 부족한 무식에, "친구 알기" 편에서 보여준 사는 모습에, 더구나 국민약골 이윤석이 부축해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국민시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저질체력에.
아마 지난주 편을 보았으면 알 것이다. 김태원과 이경규의 만담, 거기서 이경규의 이미지가 어떻던가?
"아, 참 한심하구나."
"아, 참 웃기는 아저씨구나."
그동안의 강하고 독한 캐릭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어쩌면 불쌍하게까지 여겨지는 황혼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저씨만 남고 말았다.
물론 이경규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전처럼 계속 독하고 강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경규가 유독 김태원과 콤비를 이루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더불어 김성민과도 자주 부딪히는 것도 - 그토록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김성민을 왕따시키는 캐릭터를 잡은 것도 그래서다. 김태원의 허술함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김성민의 엉뚱함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서.
그런데 말했듯 김국진은 원래 이경규를 잡는 캐릭터고, 이윤석은 이경규에게 깐족거리며 손발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김국진이 잡을 필요 없이 이경규는 항상 김성민으로 인해 곤란해 하고, 김태원과 함께 있으면서 손발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깐족거릴 것도 없이 자신을 비워간다.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김성민과 김태원의 캐릭터가 잡히면서 초반의 강하게 나가던 김국진의 캐릭터가 죽어가기 시작한 것을. 그나마 초반 어느 정도 존재감을 보여주던 이윤석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이정진이야 얼굴마담이고, 윤형빈은 아예 주눅이 들어 막동이 신세고...
결국 이번 "남자, 박학다식"에서는 거의 이경규와 김태원이 프로그램의 웃음 거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지경에 이루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만담에, 두 사람의 멍청함에 대해 주위가 그를 비웃고 공격하면서 유발되는 웃음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초반의 강하게 나가던 이경규 잡는 김국진이란 없었다. 오히려 이윤석에 더 가까운 조금 짜증스런 깐족거림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럼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 말했듯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이경규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거의 이경규가 모든 상황을 주도한다. 다른 출연자들은 그저 상황을 쫓을 뿐이고 그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이경규다. 그렇다 보니 이경규와의 관계가 프로그램의 내용을 결정하고, 캐릭터의 성격을 결정하고, 그런데 이경규 자신이 저리 뒤로 빠지며 먼저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 버렸으니. 그러면서 김성민과 김태원과의 관계만 부각되었으니. 나머지가 병풍화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이경규를 중심으로 돌아가더라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캐릭터가 이경규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그런데 이경규는 어느새 자기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하면서 한 발 빠져 버렸고, 그리고 갈 길을 잃은 나머지... 이래서야 진짜 이경규, 김성민, 김태원 세 사람의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한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답도 역시 이제까지의 방송에 있다. 김태원의 캐릭터가 어떻게 그렇게 잡혔는가? 그리고 그러한 김태원의 캐릭터가 이경규의 캐릭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은? 바로 친구집 찾아가기서부터 이어진 김태원의 캐릭터잡기에서 비롯되었다.
의도한 것인가는 모른다. 그러나 친구집 찾아가기에서 김태원은 그 엉뚱함과 더불어 뮤지션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그리고는 바로 다음 토론편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무지와 무식으로 다시 한 번 웃겨주었다. 그리고 이번 박학다식... 보다가 내가 민망해 텔레비전을 꺼 버릴 정도로 그 무식은 전설급이었다. 이로써 국민시체에서 완벽한 국민 石I로 캐릭터가 잡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경규와의 만담...
김성민이 자기 캐릭터를 잡은 것은 해병대편에서, 혼자서 해병대에 가고 싶었다고 나대던 참 얄미운 고문관 캐릭터에서부터였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안다. 저렇게 혼자 나대는 캐릭터가 얼마나 짜증나는가를. 그리고 이은 육아편에서는 네 살 짜리하고 경주를 시켜도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결정적으로 장에서 바로 뽑아져 올라온 노필터 멘트를 정의해 버렸다. 꽃중년되기에서는 왕따캐릭터를 완성해 버렸고.
자,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가? 이제까지의 방송분량을 보면 이렇게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두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데 대부분의 역량을 소모했다고 할 정도로 그 역할이 지대했더라는 것이다.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동안의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은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갔더라는 것이다. 여기에 프로그램의 중심역할을 하다 보니 이경규의 캐릭터도 함께 따라 변해갔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어떤 뜻인가? 앞으로의 방송에서도 그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국진이라든가 이윤석이라든가 윤형빈이라든가, 이정진의 경우는 여학교에서 콘서트를 하든 해서 미남 캐릭터를 돋보일 필요가 있겠고, 나머지도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방송분량을 배분할 필요가 있겠다. 즉 그 편에서만큼은 그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이번 박학다식이나 지난 토론처럼. 아닐까?
어차피 다시 원래의 독한 캐릭터로 돌아가기엔 이경규 자신이 너무 멀리 왔다. 지난 편에서 보여준 덤 앤 더머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게 박혀 이제는 "버럭!" 해봐야 그냥 웃길 뿐이다. 김성민 하나로도 쩔쩔매는데 다른 캐릭터까지 달려들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민과 배려와 도전히 필요하지 않을까? 롱런하기 위해서라도?
아무튼 이대로라면 남자의 자격 오래 가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단 세 사람 뿐인데, 때때로 거의 두 사람이 다 웃겨주는데, 방송분량이 극히 일부에게 집중되고 나면 그 프로그램은 더 이상 버라이어티가 아니게 된다. 두 사람, 혹은 세 사람 위주의 콩트가 되지. 그럴 거면 뭣하려 일곱명이나 쓰나? 리액션하라고? 한심한 거다.
한 마디로 남자의 자격의 한계가 드러난 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박학다식편은. 김성민이 병풍으로 보일 정도로 이경규와 김태원 두 사람에게 집중된 방송은 앞으로 남자의 자격이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대로 과제를 던져준 편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작진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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