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즐거워서 웃는 웃음도 웃음이다. 그러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어느새 슬몃 지어보이는 웃음도 웃음이다. 아니 오히려 슬프고 고통스럽기에 더 웃음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광대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일상이 즐겁다면 사람들은 굳이 광대를 찾을 이유가 없다. 광대가 아니더라도 일상은 그 자체로 즐거울 테니. 광대를 불러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려 하는 것은 일상이 그리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비극이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현실이 슬픈 사람들에게 슬픈 이야기란 또 하나의 슬픔을 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단할 때라도 사람은 웃고 싶다. 슬프기에 사람들은 더 웃고 싶다. 웃는 동안에라도 고단함을 잊고자. 웃는 동안에라도 슬픈 것을 잊고자. 그래서 일상이 힘들고 어려우면 오히려 희극이 크게 유행했다. 오히려 비극이 유행할 수 있는 것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회다. 비극의 슬픔을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슬프다고 모두가 슬퍼하고만 있으면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다. 슬프다고 모두가 엄숙하게만 있으면 더욱 헤어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때일수록 웃어야 하는 것이다. 광대가 필요한 이유다.
잔치가 열리고 흥을 돋을 때 광대는 필요했다. 더불어 화가 나거나 힘든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도 광대는 필요했다. 웃을 때 더 크게 웃고자 광대는 필요했고, 슬플 때도 끝내는 웃고자 광대는 필요했다.
지금도 그러지 않은가. 슬픈 일이 있으면 오힐 그래서 더 억지로 웃게 만든다. 억지로라도 웃게 만들어 잠시나마 슬픔을 잊게 해준다. 즐거운 일을 만들고, 기쁜 일을 만들고, 웃을 일을 만들고, 그것을 위로라 한다. 함께 슬퍼해주는 것도 위로지만 웃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위로다.
슬픈 일이 있으니 함께 슬퍼하는 것이야 당연히 좋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상까지 슬퍼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일상마저 슬픔에 잠겨 엄숙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슬퍼만 해서야 일상까지 슬퍼질 뿐이다. 엄숙해지기만 해서야 일상마저 딱딱하게 굳어 활기를 잃는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는 이유다. 억지로라도 웃고 떠들어야 하는 이유다. 돌아서서 눈물을 짓더라도 일상에서는 다시금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라고 광대는 있는 것일 게다.
즐거워서만 웃는다면 코미디가 왜 필요할까? 즐거워서만 웃는다면 예능이란 왜 필요할까? 항상 기쁘기에 웃는다면 왜 굳이 사람들은 다른 것들에서 웃음을 구할까? 그런데도 슬픈 일이 있으니 모두가 함께 슬퍼하자 웃는 것조차 말라는 것은... 그렇게 엄숙해져만 있으면 슬픔이라는 게 자연스레 가셔지나?
답답하기만 한 요즘 그래도 텔레비전 앞에 앉은 잠시라도 웃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이라도 거짓일지언정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웃으며 행복한 사람을의 모습이야 말로 죽은 이들을 영영 미련없이 제 갈 길로 떠내보내는 방법 아니겠는가.
단차원적이랄까. 슬픈 일이 있으니 슬퍼한다. 당연한 거다. 그러나 슬픈 일이 있으니 웃어야 한다. 그것이 강한 거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강하다. 강하기에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금껏 견뎌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예능 결방으로 개그콘서트 개그맨들 수입이 0가 되었다니 그것도 안타깝다. 물론 다른 행사나 업소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신인들의 경우는 개그콘서트가 유일할 텐데도.
시쳇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남은 사람은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슬픔을 이유로 또다른 아픔을 만들고 원망을 만드는 것은. 그것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광대는 웃어야 광대다. 광대는 웃겨야 광대다. 사람들이 웃어야 비로소 광대다. 그런데 광대도 웃지 않고 사람들도 웃지 않는다. 웃지 말라고 강요받는다. 그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슬픔이겠는가. 누구를 위한 엄숙함이고.
권위주의적인 시대의 잔흔이라 할 것이다. 하나의 슬픈 일이 있으니 모두가 슬퍼하고. 각자의 일상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이어지는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치 권력자의 변덕에 버러지처럼 죽어나가던 중세의 광대들처럼. 그들의 죽음으로써 기분을 풀려 했던 그 미친 광기처럼.
물론 나야 원래 예능을 거의 안 보니 상관없다. 남자의 자격 하나 보는데, 요즘 남자의 자격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는 즐거움이 의외로 쏠쏠하다.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것. 과연...
뇌라는 것이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고 살라고 있는 것일 텐데. 답답한 요즘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사는 것인지. 왜 웃음이 필요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사람은 왜 웃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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