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박재범 - 누구더러 해명하라 하는가?

까칠부 2010. 4. 24. 13:15

법정에서든 혹은 학술에 있어서든 예외없이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 그에 대한 입증의 책임은 그것을 제기한 당사자가 전적으로 진다.

 

즉 사고를 당했다. 상해를 당했다. 사기를 당했다. 그럴 경우 1차적으로 신고자에게 그 입증의 책임이 주어진다. 물론 수사야 경찰이 하고, 상대방에서도 그에 따른 자기 입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먼저 신고자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 사건의 개요에 대해 진술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실이 밝혀졌을 때 처벌받는 건 또 예외다.

 

신고를 했는데 신고자가 하는 말이라는 게,

 

"그 사람 찾아가 보면 안다니까!"

"가서 물어봐요. 했는지 안했는지!"

"봐봐, 대답 못하는 것 보니 분명 뭔가 있어!"

 

이런 건 신고자를 조용히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좋은 정신과 전문의를 소개해 주는 것이 좋다.

 

학술은 더 엄격하다. 어떤 이론이 있다. 그에 대해 누군가 반론한다.

 

"과연 그것이 합당한가?"

 

그러자 다시 반론한다.

 

"합당한지 않은지 당신이 입증해 보라."

 

만일 그 반론을 입증하지 못하면 내 주장이 옳은 거다. 전형적인 궤변인데... 그런 건 안 통한다. 논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논문이야 말로 자기 주장을 입증해가는 과정이다. 구체적인 논거와 치밀한 논리로써만이 최소한 자기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거다.

 

박재범이 치명적인 사생활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것을 누가 말했느냐면 JYP측에서 말했다. 그리고 2PM에서 말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는가면 그런 건 전혀 없다. 사생활에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 그게 끝이다. 그러면 과연 그에 대한 입증과 해명의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쟤 이단이다!"

 

그러면 자기가 나서서 이단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쟤 빨갱이야!"

 

그러면 또 자기가 나서서 빨갱이가 아님을 해명해야 했다. 아니면 죽었다. 결백을 입증하지 못한 탓으로.

 

과거의 법이란 그랬다. 신고자나 혹은 재판관이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게 아니다. 용의자가 혐의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것도 서슬퍼런 고문도구를 앞에 두고. 그래서 무죄를 입증하고 났더니 이미 죽은 시체더라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괜히 지금의 법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개명한 21세기에 어느 한 쪽이 의혹을 제기했으니 그것을 먼저 해명부터 하라...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다. 좋은 세상이다. 21세기라는 거다. 예전 21세기라 하면 달까지는 그냥 해외여행하듯 다녀올 수 있고, 가사는 모두 로봇이 대신해 주는 줄 알았다. 자동차 대신 모두 하늘을 날아다니는 탈 것을 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21세기에... 그것도 언론이라는 것들이.

 

박재범이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에 대해 해명하자면 먼저 한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JYP측에서 그들이 주장한 치명적인 사생활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먼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러고 나면 박재범에게도 해명의 책임이 돌아간다. 그 전에는 그저 JYP의 일방적인 의혹제기일 뿐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음해에 불과하다. 그런 것에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가? 말하지만 지금은 21세기라는 거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하긴 박재범만일까? 하여튼 뭐라도 의혹이 터지면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아닌 의혹의 대상자가 나서서 그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체적인 어떤 근거도, 심지어 사실에 대한 명확한 제시도 없음에도 그저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해지는 마녀사냥. 다른 게 마녀사냥이 아니다. 이런 게 마녀사냥이다.

 

새삼 달력을 확인한다. 2010년 맞다. 21세기가 되고도 10년이 지나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더 할 말이 없다. 그저 어이없을 뿐.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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