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720

느린 좀비에게 인류가 멸망하는 이유

사람의 달리기는 자연에서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한다. 아마 사람이 발로 쫓아가 잡을 수 있는 동물은 토끼보다 큰 종류 중에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최초에 발생한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상당히 큰 초식동물들을 사냥하던 포식자였었다. 어떻게? 사람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순간부터 몸에서 털이 사라지고 땀샘이 발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오래 움직여도 그로 인한 열을 발산하기 유리한 구조란 뜻이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건 지구상에 오로지 인간 뿐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달리면서 발생하는 열을 조절하며 오래도록 달릴 수 있도록 구조가 되어 있다. 당장은 네 발 달린 초식동물이 인간보다 빠를 수 있어도 조금만 오래 달리면 초식동물은 높아진 체온으로 인해 쉽게 지치고 인간은 여전히 그 뒤를 쫓아 달리게..

문화사회 2021.05.08

내가 조선구마사의 시나리오를 썼다면?

내가 조선구마사를 썼다면 먼저 구마활동 도중 조선으로 표류한 선교사부터 설정했을 것이다. 더불어 선교사가 구마를 통해 봉인한 악령도 같이 조선으로 표류해 왔다는 식으로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조선에도 무당이나 도사 승려 유학자들이 있어 기존의 귀신이나 요괴들은 충분히 퇴치할 수 있으니 유럽의 악령들이 표류해 온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유럽 선교사에게서 가톨릭 신앙을 배우고 구마법을 배운 백성이 무당과 승려와 도사들과 때로 경쟁하고 때로 협력하면서 악령들을 퇴치한다. 조선을 굳이 부정하지 않고서도 조선에서 구마사의 존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선구마사의 설정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내가 오래전 첫회만 보고 접었던 어느 인터넷 소설이었다. 조선의 선왕들이 죽어서 저승에 갔다가 조선의 미래..

문화사회 2021.03.27

조선구마사 논란을 보면서

창작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할만한 자기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런 독창적인 무언가가 대중과 너무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동안 리뷰를 하면서 일상성과 특수성이라는 용어로 정리해 쓰고 있었다. 대중에 익숙하면서도 대중에 신선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그 균형을 잃으면 이번과 같은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 월병? 그럴 수 있다 본다. 기생집 인테리어가 중국풍이다? 돈 많은 놈들이 중국식 좋아해서 그랬었나 보지. 술상에 피자가 올라갔으면 신부를 꼬드기겠다고 일부러 이탈리아 요리를 아는 사람 불러서 재현한 것이라 눙칠 수 있다. 물론 피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마 18세기? 19세기? 그러나 판타지 아는가. 문제는 ..

문화사회 2021.03.25

고전 창작물에서 술집 작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무협소설 초창기 작가 가운데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로 서효원이 있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이 들려준 일화가 있었다. 작가들끼리 모여서 술먹는데 술값이 모자르자 서효원이 혼자 방하나 잡고서 소설을 쓰더니 출판사 편집장을 부르더라는 것이었다. 그걸로 그날 작가들 술값은 모두 해결되었다. 요즘이야 술집에 여자가 있다면 룸살롱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다. 내가 살던 동네만 해도 룸살롱 급은 아닌데 여자들이 나와서 호객하던 술집이 아예 떼로 모여 있었다. 그걸 부르는 전문용어가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내가 알 주제는 되지 못한다. 다만 글쟁이의 문화인 양 작가들이 그런 술집에 모여 오만 대화를 나누며 취해 지낸 이야기들은 들어 알고 있다. 그러면 그런 작가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라는 게 어떤 것이겠는가. 오..

문화사회 2021.01.18

중국의 문화약탈을 보며 떠오른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

벌써 몇 년 전이냐? 주연이던 김주혁 배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도 한참은 지난 것 같은데. 드라마 '무신'이 한창 방영될 무렵 내가 이 드라마를 무지하게 욕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덕분에 드라마의 팬들로부터 욕도 상당히 들어야 했었다. 그러면 뭣 때문에 드라마를 욕했는가? 이미 사료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격구를 무슨 로마의 검투사 경기처럼 묘사하며 그것을 고려의 상무정신이라 외치는 것부터 정신이 나갔다 싶었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최충헌의 사병집단이던 도방을 마치 일본의 막부처럼 묘사한 장면이었다. 심지어 주요인물들이 입고 있던 전포마저 일본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디자인한다. 이게 뭔가? 하긴 작가부터가 인터뷰에서 일본보다 우리에게 먼저 막부가 있었다며 주..

문화사회 2020.11.29

마츠모토 이즈이의 부고에 뒤늦게 붙여

내가 기억하는 만화가 마츠모토 이즈미는 참 소박한 사람이었다. 사실 마츠모토 이즈미의 작품이라고 해봐야 오렌지로드 이후로 아마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전에 뭘 그렸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두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당장 '오렌지로드'만 해도 다카하시 루미코의 '우루세이 야츠라'를 강하게 의식하며 만든 설정임에도 이야기들이 참 소소하고 소박하다. 애니메이션과 다르다.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우루세이 야츠라'만큼이나 시끌벅적한 느낌이고 원작은 그냥 일상의 학원물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주인공 아유카와 마도카 역시 애니메이션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한 대신 한결 친근하고 귀여운 느낌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대하며 보기 시작한 신작이 아마 3권에선가 소리소문없이 끝나버린 뒤 아무..

문화사회 2020.10.18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이 죽어야 했던 이유

사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정작 계모 허씨가 전처의 소생인 장화와 홍련 두 자매를 죽여야 했던 이유가 상세히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전처의 딸이 밉기로서니 그것도 자기 아들을 시켜서 손에 피를 묻혀가며 죽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가만 당시 상황을 살펴 보면 그래야만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즉 처음 이야기가 만들어진 당시와의 시대상의 변화가 당연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비밀로 바꿔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외로 이런 경우는 많다. 함경도는 조선에서도 가장 변방이었다. 그나마 평안도는 변경이기는 해도 너른 평야도 있고 중국과 오가는 통로이기도 했기에 오히려 경제적으로 큰 이점이 있어 상당히 번성한 편이었었지만 함경도는 그마저도 없이 그저 산과 여진족이 다인 오지 중의 오지였었다. ..

문화사회 2020.09.03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자는 창작자들, 만화계와 심의의 역사를 돌아보며

원로 만화가들이 들으면 기함할 노릇이다. 황미나 작가가 유독 싫어하는 자기 작품이 있었다. 아마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였던가? 작품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작품을 내놓기까지 심의기관과 드잡이질하는 과정들이 끔찍했다 말했었다. 가난한 달동네가 주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담도 미국처럼 목제담으로, 단칸방도 절대 안 되니 가족들도 각방을 쓰고 등등등등... 진짜 거지 발싸개같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느라 원래 작품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리더라고. 그런 예가 많았었다. 초등학생이 도둑을 잡으려 쫓아가더라도 감히 나이많은 어른에게 반말을 할 수 없으니 존댓말을 써야만 했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부모자식간이나 형제자매간에도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문화사회 2020.08.20

조영남 무죄확정, 예술의 창작과 기술의 경계에 대해

몇 년 전이던가 임재범이 '고해'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말했다가 크게 곤경을 당한 적이 있었다. 실제 악보로 다듬어낸 것은 다른 작곡가인데 어째서 임재범 자신이 '고해'를 만들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윤종신도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곡은 단 하나도 없는 셈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는 윤종신이 직접 자기 곡의 악보까지 써낸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하림과 조정치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윤종신 작곡의 노래들은 원래 하림과 조정치의 작곡이었던 것일까? 실용음악과 나와서 해외유학도 다녀오고 수많은 실무를 겪었어도 결국 멜로디 하나 떠올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악기도 다룰 줄 모르는데, 그냥 콧노래만..

문화사회 2020.06.26

어느 고양이 유튜버 논란과 특별하지 않은 고양이와의 일상들

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반려동물 유튜버같은 건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고양이 놈들과 매일 하는 짓거리가 똑같아. 쭈구리 꼬맹이 있던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앉히고 컴퓨터하거나, 침대에서 끌어안고 뒹굴거나, 아니면 옆에 누이고 쓰다듬거나, 가끔 장난감으로 놀아주거나. 아, 5살 넘어가면 장난감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몸은 안 움직이고 앞발만 사용해서 꿈찔꿈찔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무슨 유튜브? 신기하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양하게 놀 수 있을까? 매번 저렇게 사람들이 관심가질만한 컨텐츠가 나올 수 있을까? 오늘도 쭈꾸미놈이랑 끌어안고 뒹굴다가, 잠들고 일어나서는 다시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다가, 창문 열고 창틀에 올라가 주위를 살피고는 다시 침대위에 똬리틀고 자는 게 전..

문화사회 202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