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2821

슬기로운 의사생활 - 어느새 다시 아이처럼, 대수롭지 않고 대단치도 않은

분명 그들은 어른이다. 특히 레지던트들에게 그들은 교수이며, 의사로서도 인생에 있어서도 한참 선배다. 환자들을 대할 때도 나이와 상관없이 그동안 겪어 온 환자들 만큼 능숙한 여유를 보여준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 그들은 철없고 세상모르던 그 시절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바로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동안 드라마 등을 통해 질리도록 보아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벌써 20년 째 친구관계를 이어 오는 다섯 중년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이룰 만큼 이뤘고, 주위로부터도 인정과 존경을 받는 그들이 그러나 자신들끼리 있을 때는 아직 미숙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같은 얼굴로 ..

드라마 2020.05.16

슬기로운 의사생활 - 평범하고 평범해서 특별해지는 병원의 일상

내가 그동안 몇몇 드라마를 비판하며 한결같이 주장왔던 것들이다. 일상의 일상화. 일상의 비일상화. 비일상의 일상화. 결국은 시청자가 납득하며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여야 하는 것이다. 배경이 되었든, 에피소드가 되었든, 캐릭터가 되었든. 그래야지만 드라마는 내 이야기가 되고, 내가 몰입하고 감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병원이란 대부분 드라마에서 매우 특별한 공간으로 설정된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우 비상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니면 이제는 식상한 정치놀음으로 날을 지새거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또한 개인으로서 병원 안에서 평범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얼마나 지루한가.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평범한 이야기들이 평범해서..

드라마 2020.05.09

그 남자의 기억법 - 어느새 의미없어진 과잉기억과 기억상실

처음 이 드라마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서도 잊을 수 없었던 남자와 기억할 수 없었던 여자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설정부터가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순간을 잊을 수 없어 매번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억하지 못하게 된 여자가 만나서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그들은 기억할 수밖에 없고, 잊을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게 될까? 그러고보면 만화도 연재가 오래 이어지다 보면 처음 설정이 어떠했었는지 작가 자신부터 헷갈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정확히는 처음 설정이야 어떠하든 관성에 의해 그저 되는대로 이야기를 붙여 나가느라 나중에는 아예 상관없어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의외로 많..

드라마 2020.05.07

굿캐스팅 -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진지한 첩보 코미디

결국 드라마라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거나. 비일상적인 공간과 비일상적인 일들을 너무 멀고 낯설기만 하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일들은 너무 평범하다. 그래서 어렵다. 그런 이야기들을 다수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쓰고 만들기가. 그런 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일상을 위장한 비일상적인 세계의 첩보원 이야기는 아주 흔한 이야기의 소재로 쓰여 왔었다. 첩보물에서 정보기관은 흔히 회사라 불린다. 말 그대로다. 딸 하나를 혼자서 낳아 기르는 미혼모에게도, 결혼한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난 생활에 찌든 중년의 아줌마에게도 국정원이란 생활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직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애국심도 있고 사..

드라마 2020.05.06

그 남자의 기억법 - 잊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들의 사랑법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잊을 수 없는 사람과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억할 수 없었던 사람이 만난다. 같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공유하지 못한다.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잊었고 한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기억한다. 너무 사랑했는데 과연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중간에 스토커와 관련한 스릴러파트는 좀 지겨웠었다. 클리셰 덩어리라 새로울 것도 없고 그런 만큼 흥미도 생기지 않고 도대체 이런 걸 왜 넣었을까. 결국 뻔한 설정과 구성으로 조기에 마무리지은 이유가 있었다. 과정이었다. 단계였다. 즉 잊을 수 없기에 기억하면서도 극복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더욱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최소한 하나는 지울 수 있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

드라마 2020.04.24

아무도 모른다 - 의미없는 피곤함, 김서형이란 배우의 한계

어쩐지 보고 있으면 피곤해져서 대충 켜놓고 딴짓하며 흘려만 봤다. 일단 보기 시작했으니 결말이 궁금하기는 한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기가 너무 피곤하고 지루하니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너무 지나치다. 너무 넘친다. 감정도, 설정도, 캐릭터도, 연출도, 제작진의 의도가 너무 넘쳐서 숨이 막힐 정도다. 비일상의 드라마를 보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걸 즐기는데 그러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한계인 것일까. 그러고보면 전부터도 힘들어간 연기 말고는 거의 보지 못한 듯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를 좋은 연기라 여기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일상이 고단한데 드라마까지 너무 피곤해져서. 나름대로 설정도 줄거리도 캐릭터까지 괜찮은 드라마이기는 ..

드라마 2020.04.22

법이라는 수단과 구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정금자의 이유

홉스는 태초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정의했었다. 인간이란 결국 욕망하는 존재란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이기다. 그래서 타인을 해하고, 타인을 갈취하고, 그런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끝없이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또한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 공동체를 이루러면 모든 인간이 이기와 욕망만을 추구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바로 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개인과 개인의 욕망과 이기를 중개하고 차단하는 매개다. 그리고 당연하게 그 법에도 또다른 개인의 욕망과 이기가 끼어들게 된다. 검사가 고발자고 판사가 심판자라면 변호사는 그 사이에서 의뢰인인 개인의 이기를, 욕망을 변호하며 지키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변호사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망과 이기라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더 많은 ..

드라마 20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