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90

물을 적게 넣고 맥주 만들기, 맥주에 대한 아쉬움을 풀다

솔직히 의도했다기보다 그냥 집안에 있는 양조도구들이 죄다 작아서 생긴 결과였다. 보리 500그램으로 맥주를 만들려는데 맥즙을 만들 냄비가 5리터도 채 되지 않았다. 대충 어떻게 되겠거니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 보리밥을 넣고 엿기름을 넣고, 낮은 온도로 5시간 이상 삭힌 뒤 단물만 시아주머니로 걸러서 홉을 넣어 한 번 끓인 뒤 발효를 시작했다. 물이 너무 적지 않은가. 실제로 적었다. 그래서 맛있었다. 맥주를 마실 때마다 항상 느끼던 불만이었다. 맛과 향이 좋다는 수입맥주를 먹으면서도 항상 아쉬웠었다. 너무 심심하다. 막걸리같은 묵직함이나 위스키같은 강렬함도 없이 먹고 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맥주를 한동안 먹지 않았었는데. 물을 적게 넣고, 홉도 듬뿍 넣고, 양조용 냉장고로 12도 온도 맞춰..

나의 이야기 2024.09.28

증류주와 메탄올,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대해

발효된 술을 증류하면 차례로 메탄올과 에탄올이 분리되어 나온다. 그 말인 즉 원래 증류하기 전의 발효주 안에는 메탄올과 에탄올이 섞여 있었단 뜻이다. 발효주를 먹으면 - 특히 과일주인 와인을 먹고 나면 숙취가 심한 이유다. 메탄올은 주로 과일에 포함된 펙틴이나 섬유소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식, 그 가운데서도 거의 순수한 전분으로 만드는 막걸리나 청주의 경우는 증류를 해도 메탄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메탄올 좀 먹는다고 사람이 바로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류주 가운데 하나인 데낄라의 경우 현지법에서 메탄올을 반드시 일정 이상 함유하도록 강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 함유량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 ..

나의 이야기 2024.07.07

쭈꾸미가 떠났다...

목요일 밤새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던 때문인지 전혀 의식을 찾지 못하던 녀석이 잠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다. 전에 쓴대로 동공반사조차 없이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인 녀석의 모습에 이제는 더이상 약도 수액도 필요없다고 동물병원에 가서 이야기한 뒤 가만히 끌어안고 있었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는 내 품에 안긴 채 잠도 자고 깨어나서는 수액까지 맞았었다. 영상은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피부아래에 수액을 놔주고 그대로 다리를 베고 누운 녀석을 토닥여주며 쓰다듬어주던 때의 모습이다. 정말 운좋게도 녀석이 떠나기 전날 아직 예쁘고 사랑스럽던 녀석의 모습을 아주 짧은 영상으로나마 남겨 놓을 수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 그나마 유동식이라 할 수 있는 츄르 정도만, 그것도 주사기로 입안에 밀어 넣어 ..

나의 이야기 2024.05.26

쭈꾸미놈 마지막 예쁜 짓

쭈꾸미놈이 이제는 체온조절도 잘 되지 않는다. 그냥 가만 내버려두면 발작하듯 몸을 떨어서 이불은 남아있는 게 없고 마음껏 오줌 싸라고 옷을 벗어 덮어주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어제 녀석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고 출근을 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쭈꾸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침대 위에 녀석을 덮어주었던 옷들만 남아 있고 쭈꾸미 녀석만 보이지 않았다. 보니까 침대 아래 굴러떨어져 있더라. 얼른 들어다 침대에 뉘여주고 옷들을 덮어주는데 이미 의식이 없었다. 동공에도 초점이 없고 내가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주사기에 물을 넣어서 먹여주니 곧잘 받아 먹는다. 츄르도 곧잘 받아먹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을 놓았었다. 그래도 아직 물과 밥은 먹을 수 있었구나. 하지만 조금 지나지 않..

나의 이야기 2024.05.23

고양이가 아프다

내가 요즘 블로그를 뜸하게 해서 예전에 오던 사람들 중 몇이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벌써 8년 전이다. 쭈그리 놈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그리고 바로 다음해 꼬맹이도 쭈그리를 쫓아 내 곁을 떠났었다. 오래전 보았던 만화영화 '집없는 소년'을 떠올렸었다. 그 만화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산 할아버지와 함께 공연하던 개들을 하나씩 잃고 마지막에 개 한 마리만 남았었을 것이다. 서울을 떠난 것은 넷이었는데 그렇게 하나씩 세상을 떠나고 어느새 나와 쭈꾸미 둘만 남게 되었다. 워낙 길고양이 출신에 어느 정도 자라서 강제로 유인해 잡아 온 놈이라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 한결같이 나를 의심하고 겉돌던 녀석과 단 둘이 남아 함께 살게 된 것이 벌써 7년이 세월인 것이다.  그 동안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니 ..

나의 이야기 2024.05.19

고구마는 삶아서 - 고구마소주 만들기

유튜브에서 고구마로 술 만드는 것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쪄서 으깬 다음에 물을 붓는데 그냥 물에 삶으면 되지 않을까? 더구나 보아하니 고구마의 풍미를 더욱 살리려 아예 고구마를 찐 물을 더해 술을 만들고 있으니 기왕이면 찌는 것보다 삶는 게 더 낫겠다. 그래서 5킬로에 1만원 하는 못난이 밤고구마를 샀다. 그냥 한 번 어떻게 되나 만들어보려 산 것이라 품종보다는 가격만 보고 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술 만드는데 밤고구마라니... ㅠㅠ 아무튼 못난이라기에는 너무 상태가 좋은 고구마들을 배송받아서 하나하나 깨끗이 씻으며 칼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해 주었다. 일단 꼭지 쪽을 잘라내고, 변질된 부분도 도려내고, 다만 껍질을 벗기는 것까지는 너무 손이 많이 가서 패쓰. 어차피 고구..

나의 이야기 2024.03.17

시중 막걸리와 청주의 비밀, 국내산과 수입산 쌀의 차이

솔직히 그 차이가 무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같은 멥쌀이라는데 수입산과 국내산 사이에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하다.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술을 만들어도 쌀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그동안 궁금했었다. 어떻게 같은 쌀로 술을 만드는데 내가 만든 막걸리는 그냥 두면 위에 황금빛 선명한 청주가 떠오르는데 시중에 파는 막걸리는 어떻게 해도 맑다고는 할 수 없는 희끄무레한 액체만 분리되어 보이는 것일까? 시중에 파는 청주의 색깔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히 비싼 고급 청주가 아니면 역시 청주의 색깔도 흐릿한 노란색을 띄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내가 만든 청주들은 한결같이 선명한 주황색에 가까운 노랑색을 띄고 있다. 그래서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주류회사들이 원재료로 국산쌀..

나의 이야기 2024.03.10

스카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든다!

이런저런 재료들로 술을 만들다가 보리로도 한 번 술을 만들어 보았다. 그런데 생보리를 그대로 개량누룩과 효모로 발효시킨 때문인지 술이 너무 시어서 못먹을 물건이 나오고 말았다. 이걸 그냥 버려야 하나... 하지만 어려서부터 먹는 걸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터라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냥 설탕 넣어서 도수를 높인 다음에 바로 증류해 버리자. 그래서 보리로 만든 술을 증류해서 병입한 것이 벌써 지난달 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두었다가 바로 어제 뚜껑을 열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이건...? 꽤나 알싸하게 치고 들어오는 알콜 특유의 매운맛이 아주 익숙했다. 어디서 먹어봤을까? 한 모금 씩 마시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안주는 당연하게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에 만두를 넣어 끓인 순대만두국...

나의 이야기 2024.03.02

한국에서 청주의 위상, 막걸리만 팔리는 이유

집에서 직접 술을 만드는데 청주가 꽤 잘 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술 좀 달라던 지인들에게 물었다. 청주와 막걸리 가운데 뭐가 더 좋은가? 짐작했다시피 거의 100%였다. 청주는 맛없다. 막걸리를 내놓으라. 사실 나도 얼마전까지 청주라면 질색을 했었다. 찜찜하고 애매한 맛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증류주처럼 탁 치고 나오는 알콜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걸리처럼 달거나 곡물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맥주처럼 청령감이 있는가면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걸 도대체 왜 먹지? 조금 비싸다는 청주들도 다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중간한 맛이 차라리 다른 술에 더 손이 가게 만들었다. 비싸다는 한산소곡주를 먹고 나서도 내 생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직접 술을 만들면서 청주를 ..

나의 이야기 2023.12.29

술과 식혜에는 고두밥인 이유?

궁금했었다. 왜 고두밥인 것일까? 예전 우리집에서는 그냥 밥을 지어 식혜를 만들었었다. 그냥 밥솥에 밥을 지어서 그것을 엿기름으로 삭히면 식혜였었다. 식혜라기보다 어려서는 감주라 불렀었다. 그런데 레시피 찾아보니 식혜도 고두밥을 지으라 한다. 어차피 맥아에 포함된 효소가 전분을 당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에 의해 익은, 즉 호화된 전분이다. 생전분을 당화하지 못하기에 익은 전분을 만들고자 열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두밥과 일반밥의 차이는 무엇인가?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일단 밥은 서로 달라붙고 뭉개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두밥은 쌀알들이 그렇게까지 붙어 있지 않는다. 식혜든 술이든 잘 삭히려면 쌀알과 쌀알 사이에 효소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밥도 물을 부터 흩어..

나의 이야기 2023.12.05